아렌트의 정치 표지

단행본

아렌트의 정치

한나 아렌트의 정치이론과 한국사회

권정우, 하승우 지음

가격
15,000원
펴낸 날
2015년 8월 24일
쪽수
272쪽
판형
144×215mm
ISBN
978-89-97090-49-5 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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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아렌트의 눈으로 본 한국사회

정치 없이는 시민도 없다!
용기와 우정이 만남과 정치를 가능케 한다!
평등과 권위를 조화시키는 조직, 평의회!
자유로서의 혁명과 혁명정신을 보장하는 헌법개정!

“책임을 묻고 원인을 따지고 싶지만 이미 우리는 낱낱이 홀로인지라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사람이 사는 세상인가? 만일 공론장이 있었더라면, 지배자에게 권리를 양도한 채 정치에서 멀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설령 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거짓을 일삼는 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지 않았을까? 최소한 배가 가라앉고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그 와중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찮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은 전체주의와 맞섰던 사상가 한나 아렌트의 사상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지금의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데 아렌트의 관점이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사회를 분석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아렌트가 평생을 바쳐 분석했던 개념인 수용소와 전체주의는 한국사회의 민낯을 드러낼 수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수용소에 가장 어울리는 말 아닌가. 민주주의를 논하지만 시민은 여전히 통제의 대상이고, ‘먹고사니즘’이라는 말은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보다 생존에 얽매인 존재로 만든다. 그리고 변명과 거짓말, 책임 회피의 수단이자 동시에 공격과 비난, 배제의 수단이 된 정치는 시대의 불을 밝히기는커녕 사회를 캄캄한 어둠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과 해킹은 정권의 폭력에 대한 공포심을 키우며 사람들의 관계를 단속한다.

아렌트의 사상은 부정적인 현실을 드러내는 날카로운 메스이기도 하지만 상처에 대한 내성을 기르고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기르며 상처를 봉합하는 바늘이기도 하다. 이 책의 서문에 담긴 아렌트가 던지는 다섯 가지 화두는 메스로 가르고 바늘로 봉합하려는 시도이다. 폭력을 가르고 권력을 구성하고, 우리 사회의 전체주의를 고발하며 다원성의 정치를 드러내고, 주권의 경계를 지적하며 시민불복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건 “사람 냄새가 나는 사회, 각자가 가진 다양한 향기가 인정되고 충분히 섞일 수 있는 사회,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기꺼이 함께 연대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우리가 아렌트를 읽고자 하는 이유도 단순한 지적 호기심보다 우리가 사는 시대와 사회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논의하려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그 체제 너머의 정치를 보려는 사람에게, 정치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실현되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개인주의의 냉소나 전체주의의 열광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아렌트는 좋은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아렌트의 생각과 한국의 현실과 밀착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아렌트에게 다가서는 과정은 쉽지 않다. 아렌트의 언어와 사상이 낯설기도 하거니와 국내에 소개된 번역서들이 낯섦과 어려움을 더한다. 그리고 사상이란 현실과 치열하게 대면하면서 생명력을 얻는데, 아렌트의 사상이 나오게 된 맥락은 책으로만 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아렌트의 개념들을 한국사회의 현실과 어떻게 맞닥뜨리게 해야 할지 막막한 면도 있다. 어려운 책을 읽다 보면, 아렌트를 공부하는 게 지금 우리 현실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이런 사람들에게 조그만 실마리를 제공하려 한다.

서문 중에서

아렌트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다섯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한국사회에서 정치는 항상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되고 이해되는데, 아렌트에 따르면 정치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인간은 뜻하는 바를 모두 이룰 수 있는 신도 아니고 동일한 필요와 욕구를 갖고서 서로 먹고 먹히는 동물도 아니기에 정치가 중요하다. 아렌트에게 정치는 독특함과 고유함을 가진 인간이 같이 살기 위해서 의견을 조율하고 협의하는 다양한 과정들이고, 인간은 정치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색깔을 찾고 자유를 실현하며 명예를 얻는다. 그러니 정치가 없다면 개인의 자유도, 공동체의 평화도, 인간이 서로 공유하는 세계도 없어진다. 힘이 아니라 설득을 통해 공동의 사안을 결정하는 것이 정치이고, 인간은 타고난 권리가 아니라 말과 행위로 공론장에 참여하면서 시민이 된다. 정치 없이는 시민도 없다. 아렌트 식으로 보면, 정치를 포기하면서 우리는 점점 동물이 되어가고 있다.
아렌트는 권력도 부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아렌트는 권력과 폭력을 구분하면서 서로 자유롭게 만나는 사람들이 권력을 구성하고 사람들이 흩어지면 권력도 사라진다고 봤다. 즉 권력은 다수의 모여 있는 존재에서 생기고 이 권력은 특정 개인의 폭력을 막는다. 각기 다른 개인들이 하나의 공동체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건 각자의 평등을 보장받고 각자의 목소리를 존중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과 폭력이 구분되지 않는 현대사를 경험한 탓에 우리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라고 말하지만, 아렌트는 적극적으로 권력을 구성해야 정치가 지속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권력은 사람들 사이에서 구성되는 것이기에 장악하거나 행사하는 게 아니라 구성하고 누리는 것이다. 이런 아렌트의 주장은 정치와 권력에 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되짚어볼 수 있게 한다.
둘째, 아렌트의 사상은 지금 현재의 한국을 분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 민주화의 성과를 자랑했던 한국의 역사가 어느 순간부터 뒤로 후퇴하는 느낌을 준다. 박근혜 정부의 등장은 그 느낌을 현실화시켰다. 단지 독재자의 딸이라서가 아니다. 이 정부에는 기존의 분석이 적용되지 않는다. 중요한 사건이 터져도 정부의 대처는 너무 늦거나 효과적이지 않은데, 사건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은 정부를 비판하고 국회를 비난한다.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정책결정권자가 정부를 비난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유체이탈화법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이런 현상은 대통령만이 아니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다른 인물들에게서도 드러난다.
그리고 미국 대사의 쾌유를 기원한다며, 동성애를 반대한다며 광장에 모여 부채춤을 추고 절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뭔가 시대착오적이다. 밀실에서 비밀스럽게 결정되는 일들이 잦아지고 경찰과 국가정보원은 시민들의 뒤를 캐고 입을 막는다. 지나친 애정과 과도한 충성이 빚어낸 일시적인 현상일까? 저런 모습은 우연일까? 아렌트는 이런 현상을 분석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이런 현상을 ‘전체주의’라 이름 붙였다. 아렌트의 사상이 지금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셋째, 한국의 많은 정치인이나 시민들은 자신과 반대되는 입장을 다르다고 보지 않고 틀렸거나 악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런 입장을 ‘의견’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 사람의 ‘의지’로 이해하기 때문에 사람을 통제하려고 한다. 그래서 차이가 차별을 부르고 때로는 폭력으로 다스려진다. ‘빨갱이’나 ‘종북’이라는 호칭이 대표적이다. 국가기관, 언론이 그렇게 부르는 순간 당사자는 그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사회의 악으로 규정되고 이 사회에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단지 생각이나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다른 입장을 취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는 악마가 된다. 악과 공존할 수 없듯이 상대는 멸종시켜야 할 대상이 된다. 안타깝지만 이런 사유는 기득권층만이 아니라 소위 진보진영 속에도 자리를 잡고 있다.
아렌트는 이런 생각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이런 사고방식이 바로 전체주의를 부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이성적이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그의 인식은 그가 살아온 현실을 뛰어넘지 못한다. 제아무리 헌신적이고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도 그의 삶은 그 현실 속에 있다. 똑똑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치열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 삶은 언제나 어떤 한계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의견을 주고받아야 하고, 이 과정은 궁극의 진리를 찾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합의를 모으는 과정이다. 상대와 논쟁하고 다툼을 할 수 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상대방을 죽일 권리도, 상대방을 매장시킬 이유도 없다. 이 선을 넘어서면 공존은 불가능하다. 아렌트의 사상은 정치를 진리나 선악에서 빼내 다양성, 다원성으로 가져온다.
넷째, 주권자 없는 정치는 불가능한가?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주권이란 말이 자주 등장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그렇다, 아렌트는 주권을 부정하지 않는다. 주권은 함께 결합한 다수의 사람들이 만든 것이고 그렇기에 집단으로 행사되는 권리이다. 나라를 세우고 주권을 확립하는 과정은 정치공동체를 세우고 자유의 공간을 만드는 중요한 과정이다. 다만 문제는 이렇게 혁명 과정에서 구성되는 주권이 혁명 이후에도 지속될 방법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혁명 이후에 공동체를 찾아오는 사람, 혁명 이후에 공동체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에게 주권은 무엇일까? 이들도 주권을 구성했던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우받고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주권은 필요하지만 다루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공론장이 있다면 주권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권은 지배의 도구로 변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아렌트는 풀뿌리 차원에서 끊임없이 정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평의회를 중요한 장치로 봤다. 주권을 반복해서 요구하고 주장하는 것보다 우리 삶에서 내 옆의 사람과 손을 잡고 정치를 활성화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 아렌트의 사상은 죽은 주권을 살아 있는 정치로 전환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다섯째, 거짓말을 하는 정부를 어떻게 해야 하나? 거짓말이 정치의 수단으로 묵인되고 공개적으로 내건 약속[公約]이 빈말[空約]이 되어도 묵인되는 한국사회에서 정치가 과연 제 몫을 할 수 있을까? 공권력을 말하지만 시민에게 노골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정부는 진정 권력일까? 자신을 뽑아준 시민에게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깨는 정부가 시민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시민이 그 정부의 법과 명령을 따라야 할까? 한국에 살다 보면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종종 있다.
아렌트도 이런 물음을 던져야 할 때가 있었다. 1960년대 말 아렌트는 미국정부가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전쟁을 일으키고 기밀을 내세워 의회와 국민을 속이거나 정보를 은폐하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시민불복종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부패한 정부가 시민을 속이고 헌법을 파괴한다면, 현 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암묵적 동의가 철회될 것이기에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시민불복종이야말로 헌법정신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아렌트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서도 도움을 준다.
결국 아렌트가 주장하는 정치는 ‘인간’과 다양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람 냄새가 나는 사회, 각자가 가진 다양한 향기가 인정되고 충분히 섞일 수 있는 사회,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기꺼이 함께 연대하는 사회가 그런 세계이다. 당연히 그런 사회는 그냥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렌트는 그런 의미에서 교육과 정치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교육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나 기능의 습득이 아니라 각자에게 내재된 진리를 드러내고 상기시키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이 과정은 서로 간의 대화를 통해 구성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갈망하는 것도 이런 것이 아닐까?

추천사 중에서

이 책의 가치는 우리에게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되돌아보게 하고 물음을 던지게 한다는 데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은 아우슈비츠만이 아니라 한반도 자체가 수용소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인식시키고, 그 제도화된 폭력의 다양한 양상과 근본적 구조를 열어 보여준다. 내 편에서 보자면 한반도의 끔찍한 현실에 비하면 이 책의 논조는 한나 아렌트 때문에 부질없이 너무 고상한가 싶기도 하고, 더러는 문맥에 어긋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고상함은 이론의 숙명일 수도 있고, 아렌트가 타자라고는 하나 도리어 그 때문에 우리를 비추어 주는 거울일 수도 있으니,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의 접근 방식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한나 아렌트뿐만 아니라 한국의 학자들을 호명하여 한국의 현실과 대질시킨다는 점에서도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서양 학문의 수동적 수용에서 벗어나 한국의 자생적 학문 공간을 열기 위한 학문적 몸부림이라는 점에서도 가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김상봉(전남대 철학과 교수)

저자

권정우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자랐고 초·중·고 학생회장을 지냈다. 누군가의 앞에 나서는 괜한 우월감이 좋아 늘 리더가 되고 싶어했다. 연주자가 되기 위해 음대를 가는 것처럼 정치인이 되고 싶어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막상 들어와 보니 정치학은 정치인이 되기 위한 참고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는 오래된 철학책이었다. 한술 더 떠 우연한 계기로 만난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정치적 삶을 살지 않으면 동물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또한 인간은 다른 인간을 만나는 물리적 공간인 정치 영역을 가져야만 하고 그 속에서 자유로움, 인간다움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부끄러웠다. 나 홀로의 정치가 아니라 모두의 정치여야만, 모두가 정치적인 인간(정치인)이어야만 했다. 아렌트의 인간론에 관한 연구가 석사 논문 주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대중에서 정치적 인간으로’라는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먹고사는 일에만 열중하는 현실의 대중이 어떻게 정치적 인간이 될 수 있는가를 아렌트에게 묻는 작업이었다. 아렌트는 용기를 내야 한다고 대답했다.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대답했다. 간단해 보이지만 쉽지 않은 화두를 던져 주었다. 지금은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건네진 화두를 이어나가 도시와 공론장,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시민과 시민권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늘 용기 있는 삶을 꿈꾸며 살고 있다.

하승우
부산에서 태어났고 감투와는 인연이 없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앞에 나서는 걸 싫어했고 낯가림도 심했다.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건 순전히 입시제도 때문이었다(2지망으로 대학에 합격했다). 운동판을 기웃거리기도 했으나 체질에 잘 맞지 않았고, 정치학을 공부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공부를 시작한 것도, 남들 앞에 서서 강의하고 이야기를 듣게 된 것도 필연보다 우연에 가깝다. 아나키즘을 품고 살던 중 아렌트를 만났고, 그 삶과 사상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어떻게 권력을 부정하는 아나키즘과 권력을 구성하려는 아렌트를 동시에 좋아하냐고 누가 묻는다면, 독특하고 자율적인 인간의 삶을 추구한다는 점, 자유를 위해 연대해야 한다는 점, 두 사상이 풀뿌리라는 기반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내겐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땡땡책협동조합 땡초,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사회투자지원재단 연구위원, 교육공동체 벗 이사 등 여러 개의 가면을 번갈아 쓰면서 사람들을 만난다. 나무 뒤에 숨어서 강자에게 독침을 날리는 삶, 괴팍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양산박을 꿈꾸며 산다. 『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 『민주주의에 反하다』, 『공공성』,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 등의 책을 썼다.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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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비추는 거울 김상봉
서문 아렌트, 수용소와 전체주의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다

Ⅰ부 수용소와 공론장

수용소와 무슬림
인간에 대한 완전한 지배는 가능한가? | 수용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왜 인간은 제 발로 가스실에 들어갔나? | 누가 아이히만인가?
INSIDE BOOK 『전체주의의 기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대중과 안전
대중은 누구인가? | 왜 대중은 통제되어야 하나?
대중에게는 먹고사는 문제가 정말 중요할까? | 왜 정치가 중요한가?
INSIDE BOOK 『인간의 조건』

공론장과 자유
자유란 무엇인가? | 권력이란 무엇인가?
자유와 평등이 다를까? | 왜 정치에서 용기가 중요한가?
INSIDE BOOK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과거와 미래 사이』

II부 전체주의와 풀뿌리

전체주의와 종북
어떤 상황이 전체주의를 불러오는가? | 전체주의는 무엇을 파괴하나?
왜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에 갇혀 있나?
우리는 전체주의의 조건에서 벗어났을까?
INSIDE BOOK 『전체주의의 기원』, 『과거와 미래 사이』

정치와 권력
소크라테스는 왜 독배를 받았나? | 정치란 무엇인가?
왜 정치에서 권력이 중요한가? | 한국 정치에도 가능성이 있나?
INSIDE BOOK 『정치의 약속』, 『정신의 삶 1: 사유』

혁명과 풀뿌리
자유로서의 혁명은 왜 어려웠을까? | 고난과 슬픔의 정치는 가능한가?
우리 시대에 정치를 부활시킬 방법은?
INSIDE BOOK 『공화국의 위기』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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