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와 공화국
변홍철 산문집
변홍철 지음
- 가격
- 13,000원
- 펴낸 날
- 2015년 3월 1일
- 쪽수
- 312쪽
- 판형
- 134×205mm
- ISBN
- 978-89-97090-43-3 03810
서점에서 만나기
책 소개
『녹색평론』 전 편집주간이었으며, 현재 청도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변홍철의 첫 산문집.
저자
변홍철
1969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살았다. 고려대 국문과에서 공부하며 동인지 『저인망』으로 시작(詩作) 활동을 시작했다. 졸업 후 대구로 돌아와 11년간 『녹색평론』 편집장과 주간으로 일했다.
현재 청도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청소년인문학모임 강냉이’와 ‘후마네르도서관’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문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경제성장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 사회에서 필요한 삶의 기술과 정치에 대해 탐구하는 ‘하이하버연구소’를 청년들과 같이 만들어 가는 중이다. 시집으로 『어린 왕자, 후쿠시마 이후』가 있다.
서문
「두 가지 고백」
하나
글을 쓴다는 뚜렷한 자의식도 없이, 체계적인 사상이나 짜임새 있는 공부도 없이, 이런저런 지면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무작정 글을 써왔다. 그러니 이 졸편들 사이에 무슨 일관성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보고하고, 전파하고, 호소하기 위한 ‘필요’가 늘 앞선, 그래서 거칠기 짝이 없는 글들이다.
이런 볼품 없는 조각글들을 묶어 책으로 내는 일은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분명 염치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런 낯 뜨거운 일을 저지르는 것은 “도대체 내가 그동안 무슨 생각으로, 무슨 일들을 저지르며 살아왔던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한번쯤은 해 보아야 하겠다는, 순전한 이기심의 발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부연하자면 공부든, 투쟁이든, 삶이든, 이렇게 막무가내로 혼란스럽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이제 이때쯤 되면 차마 부끄럽더라도 돌아볼 것은 돌아보고,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회피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라기보다는 무모함에 자신을 맡겨보기로 했다. 이런 무모함이 더 많은 부끄러움과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으나…….
그런 질문과 반성을 위해 굳이 출판물의 형식까지 취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회의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이나 반성의 실마리를 나 혼자서 찾기는 어렵다, 그동안 내가 무슨 생각으로 무슨 일들에 관여했든, 내가 잠시 머물거나 걸어왔던 길 어느 한구석도 온전한 내 ‘사유지’는 없다는 핑계로, 불필요한 종이의 낭비를 다소 합리화해 본다.
둘
‘詩’와 ‘공화국’이라는 거룩하고 눈물겨운 낱말을 함부로 이어서, 두서도 없는 이 산문집의 제목으로 갖다 붙이는 것에 대해 머리 숙여 양해를 구한다. 누구에게? 정직한 노동으로 하루하루 이 땅의 위대한 ‘詩’를 써 나가는 모든 형제자매들께, 그리고 언젠가 우리 모두가 ‘내 나라’라고 부르게 될 아름다운 ‘공화국’을 향해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투쟁하는 모든 동지들께.
삼평리 은사시나무 위로 돋는 별처럼, 이 졸편 더미 속에 행여 빛나는 조각이 눈에 띈다면, 그것의 주인은 그들이라고 미리 고백해 둔다. 그럴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충실한 공부라고는 해 보지 못했으나, 언제나 배움을 동경하도록 자극해 주시는 모든 스승과 선배들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이 감사드린다.
본문 중에서
24-25쪽: 그러나 지난 여름, 거리에서 만났던 한 이웃 앞에서 내가 느낀 부끄러움과 자괴감의 근원은 그런 핑계로 결코 면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 이 사회를 휩쓸고 있는 암울함과 참담함을 직시한다면, 이 세밑의 어둠과 차가움 앞에서 감히 ‘희망’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자포자기할 수 있는 권리가 나에게 없다는 인식은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무슨 ‘지식인의 책무’ 같은 대단한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다.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을 논할 만한 자격도, 책임도 나에게는 없다. 그러나 처지와 정세 따위를 핑계로 ‘정신의 타락’과 ‘나태함’마저 스스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루쉰(魯迅)의 다음과 같은 글을 읽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부디 이 길이, 비틀거리면서라도 정의(正義)의 언저리를 향해 가는 여정이 될 수 있기를.
87-88쪽: 중학생인 아들놈과 친구들은 ‘학원이 없는’ 마을에서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나 공부에 대한 강박 없이 신나게 잘도 놀았고, 공부할 때도 늘 모여서 서로 기꺼이 도와주었다. 특히 체육이나 음악, 미술 같은 과목들은 도시의 큰 학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수업 조건이 훌륭했다. 교사들이 아이 하나하나에게 거의 개인 교습을 하듯이 수업을 할 수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워낙에 학생이 적은 지역이다 보니 선생이나 친구들이 전학 온 아이들을 참으로 ‘소중한 존재’로 대해 주었다는 점이다. 아들놈이 다닌 학교에서는 “이제 2학년도 여섯 명이 되었으니 편을 짜서 축구를 할 수도 있다”면서, 유난히 체구가 작은 아들놈을 ‘귀한 선수’로 기꺼이 대우해 준 것이다. 수업을 마친 아들놈이 친구들과 웃고 떠들면서 학교 정문을 나와 가을이 물든 오후의 언덕길을 내려오는 모습을 멀리서 본 적이 몇 번 있는데, 이 나라의 참혹하고 남루한 ‘교육 현실’로부터 벗어나 있는 듯한 ‘착각’마저 잠시 들었다.
95-96쪽: 대도시에 사는 여고생이 “몇 년 뒤에는 꼭 농사를 지어 해를 끼치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의아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이 친구의 평소 생각과 삶을 지켜보면, 이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먹는 것부터 우리가 쓰고 버리는 문제들에 늘 예민한 문제의식을 품고 올바른 실천을 하려고 노력하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도시에 살면서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 다짐을 꼭 이루었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이루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는 그대로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105쪽: 우리가 이 투쟁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도대체 우리에게 ‘헌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기억하고, 그것이 무미건조한 법조문이 아닌, 우리 모두의 삶을 규정하는 살아있는 ‘합의’로서 생명력을 갖도록 함께 노력하는 일이다. 우리는 어떤 나라를 지향하고 있는가, 하나의 정치공동체로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어떤 길로 가꾸어 가려고 하는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가 헌법이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수시로 헌법을 함께 읽고, 토론하고, 그 이상과 가치를 구체적인 삶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결코 입법자들이나 직업적 정치인들만의 몫이 아니다.
142-143쪽: 이런 의미에서 나는 ‘삼평리 투쟁’의 비밀은 바로 그 동네 할매들이 보여준 ‘위대한 시인들의 마음’에 있다고 믿는다. 아니, ‘좋은 시’ 앞에서 감동을 느끼듯, 사심 없이 그 할매들의 마음에 감응한 우리 모두의 힘에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 삼평리 법률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 프로젝트에 전국에서 십시일반 보태어지는 우정과 연대의 힘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번 그것을 실감하고 있다.
‘고통을 같이하는 감수성’이 ‘시인의 마음’이라면, 적어도 삼평리를 기억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는 다들 조금씩은 이미 시인임에 틀림없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모든 위대한 투쟁 속에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밖에 없는 진실이기도 하다.
이 사회 전체의 부와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세력의 준동이 아무리 거세다 한들, 우리가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조금씩 시인인 나라, 그것의 다른 이름이 바로 ‘공화국’(共和國) 아닐까? 아직 우리가 이르지 못한, 그러나 우리 속에서 계속 자라나 언젠가 껍데기를 깨고 일어설.
148쪽: ‘다른 삶’을 상상할 자유는 획일적인 성장주의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그것은 창조적 혼란 없이는 불가능하다. 혼란 속에서라야 개인이든 사회든 성찰할 수 있다. 이미 길이 뻔하게 정해져 있다면, 개인도 사회도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위해 고뇌하지 않는다. 좀더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도 사회적 토론도, 그 동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192쪽: “문제는 하나, 답은 여러 가지”라는 명제는 ‘다양성’과 ‘연대’의 옹호라는 측면에서 분명한 진실이다. 그러므로 모든 운동이 치아파스 농민공동체의 방식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는 것 또한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국제적 규모의 정치운동”의 신호탄이라고 우리가 기꺼이 찬사를 보내는 만큼, 사파티스타는 인디오의 땅과 농민공동체 속에 그 뿌리를 굳건히 박고 있다는 사실에도 우리는 마땅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237쪽: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을 읽다 보면, 카미노가 단지 지도 위에 선으로 표시된 길이 아니라, 지난 천 년 동안 먼저 이 길을 걸어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순례자들, 그리고 그 길 주변에 ‘뿌리내리고’ 살면서 순례자들을 돕고 보살펴 온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일구어온 역사적 ‘공동체’라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순례(걷기)라는 행위 자체가 이 카미노라는 공간에서는 ‘노마드’가 아닌 전통과 대지, 신앙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자 ‘뿌리내리기’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순례의 초입에서 리 호이나키는 이렇게 간구한다. “일찍이 순례자들이 쉬어갔던 바로 그 하늘 아래서 그들이 밟았던 바로 그 땅에 내 발을 뿌리내리고 싶다.”
298쪽: 이러한 때에 슈마허를 읽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언어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사유하고 성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어야말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무기’가 아닌가. 한 명의 시민으로서,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투쟁에 참여하는 마음으로, 현대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굿 워크』를 동료 시민들과 함께 읽고 싶다.
차례
펼쳐 보기
서문 두 가지 고백 007
1부
독도는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의 것이다
자포자기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촛불, 도시락, 詩
독도 페티시즘
대구에 없는 것 ― 존경, 책임, 정치
일상이 두렵다
나로호 발사 성공, 환호만 할 것인가
“나는 국익을 원하지 않는다”
한 초등학생의 죽음과 일제고사
왜 ‘학생인권’인가
어떤 유학
청소년 인문학 모임 ‘강냉이’ 이야기
성금의 정치학
헌법과 전체주의
죽어가는 집 앞에 꽃 심겠다는 자들
2부
삼평리 당산나무 119
삼평리에서 생각하는 ‘오월 광주’ 124
식민지 보름달 131
詩와 공화국 137
탈핵과 총파업 145
방사능 오염과 헌법 155
우리의 안전을 국가에 맡겨도 될까? 161
‘원자력 클러스터’는 경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167
미군기지와 민중의 평화 176
3부
땅의 사람들, 풀뿌리의 혁명 185
‘작은 자’가 진실을 본다 199
직접행동과 비폭력의 논리 212
“누군가는 먼저 총을 내려놓아야 한다” 223
카미노, 고통과 우정의 신비 233
수난과 부활의 알레고리 244
‘긴 여름의 끝’에서 ‘희망’을 생각한다 250
무엇이 우리를 미치게 하는가 261
역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직선인가 271
파국 앞에서 285
‘좋은 노동’과 인문교육 297
